<이티>라는 영화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어른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까지 화면에 나오는 모습은 철저하게 아이들과 외계인의 얼굴뿐이고 어른의 얼굴은 주인공인 엘리엇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거의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등장인물이 어린이들뿐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외계인을 어떻게든 자신의 별로 되돌려 보내 주려는 아이들과 외계인을 포획해 연구 대상으로 삼으려는 어른들의 대결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어른이 등장한다. 그런데도 적인 어른들의 얼굴은 화면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어른의 얼굴이 화면에 비치는가 싶으면 부자연스럽게도 허리부터 상체가 화면에서 잘려 있거나 역광으로 실루엣 처리가 되어 있기도 하고, 때로는 방사능을 막기 위해(서라고 생각되는) 헬멧을 쓰고 있어서 항상 표정을 읽을 수 없다. …
어른의 얼굴은 영화 후반의 클라이맥스에 가서야 등장한다. 거의 죽게 된 외계인을 구하기 위해 어른들과 아이들이 협력하는 장면에 이르러 비로소 어른들은 헬멧을 벗고 주인공 엘리엇 남매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한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다산초당, 2019,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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