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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잔-98편] 주먹을 쥐고선 악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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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편  더함께새희망_에밀

주먹을 쥐고선 악수할 수 없다

 

 

아주 오래전 얘기야.

60년대에는 남대문시장에 가서 안 속고 물건 사면 서울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었어. 그만큼 남대문시장은 바가지를 잘 씌우기로 악명 높은 시장이었지.

 

이불감을 사러 갔지. 그런데 어디서 사야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거라. 큰 걱정을 안고 비단 가게로 무작정 들어가서는 솔직하게 말했어.

“이불감을 사려고 하는데 주인아저씨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으로 골라주세요. 제가 천에 대해서 잘 모르거든요.”

나는 비단 장수를 믿기로 했어. 천 장사를 하는 사람보다 누가 더 잘 알겠어?

 

“이렇게 좋은 물건은 어디 가도 못 삽니다. 20년 넘게 남대문에서 비단 가게를 했는데 나를 믿고 골라달라는 손님은 처음이요. 젊은 아가씨가 참 고맙네요.”

 

물건은 좋은 것으로 잘 골랐으니 다음은 가장 중요한 가격 흥정.

나는 이번에도 솔직하게 이야기했어.

“아저씨, 얼마를 깎아야 친구들이 바가지 안 썼다고 할까요? 아저씨가 알아서 깎아주세요.”

 

아저씨는 피식 웃으면서 말씀하셨어.

“남대문시장에서 이만큼 싸고 품질 좋은 천을 산 사람 있으면 데리고 오세요.”

 

이불감을 사서 동네 단골 이불 가게에 들렀더니 자기도 이불 가게 10년, 비단 장사 20년을 했는데 정말 좋은 물건을 잘 샀다고 말해주었어. 이불 가게 주인도 그 도매 가게를 알려달라고 할 정도였어.

 

나는 그 일을 통해 주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웠어.

 

길거리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도 똑같이 그 방법을 써봤어. 내 손으로 물건을 뒤적거리지 않고 “할머니, 알아서 좋은 걸로 주세요.”라고 말이야. 그러면 항상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더라고. 그것도 기분 좋게. 나는 이 방법이 좋다는 확신을 얻었기에 50년 동안 이 방법으로 물건을 사고 있어.

 

길거리에서 파는 야채라고 함부로 뒤척거리지 마. 할머니에게는 부추 한 단이 자신의 명품인 거거든.

 

 

양순자, 「어른공부」, 가디언, 2022

 

 

 
 

비단 가게 주인과 채소 파는 할머니 이야기는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기보단 존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일화인 것 같습니다.

 

저자가 비단 장수를 믿기로 한 것은, 그 안에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믿음이 있어서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채소 파는 할머니의 부추 한 단을 명품이라고 말하였듯이, 비단 장수로 스무 해가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라면 그가 추천하는 비단이 손수 짠 비단 못지않게 좋은 제품일 것이라는 인정이, 존중이 바탕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가 팍팍하다 보니 사람 믿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막연한 의심과 편견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의심하지 않고 상대를 쉽게 인정해버리면 얕잡아보는 건 아닐까, 불이익을 당하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면서요.

해서 인간성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주먹을 쥐고서는 악수를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믿지 못하면서 믿을 만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테니까요.

 

‘자신의 가치를 즐기고 싶다면 세상에도 그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입니다.

 

세상이 빗장을 먼저 풀어주기만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친절과 배려를 보이는 미덕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존중해야 합니다. 신뢰가 필요하다면 먼저 신뢰하는 태도를 보여야겠습니다.

 

 

더함께새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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