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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잔-83편] 버릇이 없는 건 아이들의 직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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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편  더함께새희망_에밀

 

버릇이 없는 것은 아이들의 직업이에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요즘 애들’은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까? 없는 것 같습니까?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이 말은 파르테논 신전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그럽니다. 물론 낙서겠지요?

 

아무튼 버릇이라는 게 뭡니까?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딱 태어나서 보니까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데 세상에는 버릇이라는 게 이미 있는 거예요. 버릇은 단독자로서의 ‘나’들이 집단으로서의 ‘우리’가 되도록 만들어진 장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버릇이 없다는 말은 어른들끼리 만들어 놓은 어떤 틀 안에 그 아이들이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이들한테 버릇이 없는 것은 아이들 잘못이 아니에요. 이건 아이들의 직업이에요.

 

여기서 또 한 가지! 어른들은 어른의 단계가 인간으로서의 이상적인 단계 내지는 바람직한 단계라고 착각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해요. 어린이들을 아직 어른이 아닌 단계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린이를 미성숙한 상태로 본다는 것은 어른의 단계를 성숙한 단계로 전제하고, 그 시각으로 어린이들을 보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러면 어린이는 어린이로서의 삶, 어린이로서의 세계를 한 번도 살 수가 없습니다. 항상 아직 미성숙한 어른으로서만 대접받는 것이지요. 어린이를 어린이의 세계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일부 중략)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소나무, 2013, p.95

 

 

어린이의 어원을 알아보니 어린이의 ‘어리다’가 ‘얼이 완전하게 익지 않아 지혜롭지 못하거나 미숙하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나 소파 방정환 선생이 아이들을 ‘어린이’라고 칭하게 된 까닭은 그들의 미숙함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닌, 아이들을 인격적인 사람으로 존중해 줄 용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새로 생긴 음식점이나 카페, 전시장 같은 곳을 가보면, 특정 연령 어린이의 출입 제한을 두는 곳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과 일부 어른들의 방임 때문이라고들 하죠. 비행기에서 우렁차게 우는 아기로 인해 아무리 초보 엄마가 쩔쩔매도 사람들은 불편한 내색을 거두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는 언제부터 어른이었을까요?

나는 나자마자 어른이었나요?

또, 우리는 얼마나 어른스러운가요?

나는 얼마나 성숙하였나요?

 

아이들의 자유분방함과 순수함이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곡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른들만을 위해 허락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해, 한때 어린이였던 우리 각자의 인생 전체에 걸쳐 열린 세상임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수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함께새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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