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자 기준 없애 공적 역할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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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자 기준 없애 공적 역할 확대

2012년 8월7일 경상남도 거제시청 화단에서 ㄱ씨(78)가 숨진 채 발견됐다.
화단에는 ㄱ씨가 마시다 남은 것으로 보이는 독극물과 유서가 든 작은 손가방이 놓여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유서에는 '미안하다, 살아가기 힘든데 기초생활 지원금 지급이 중단된 게 원망스럽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ㄱ씨는 그해 6월 무직이던 사위가 직장을 얻으면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부양의무자'인 사위는 월급의 50%를 압류당하는 형편이었고, 대학에 다니는 자녀도 2명이나 있었다.

2013년 12월에는 부산에서 ㄴ씨(56)가 큰딸의 취직으로 수급자에서 탈락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6년째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ㄴ씨는 수급자 자격을 잃으면서 졸지에 매달 100만원가량의 병원비를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19일 공개한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 내년부터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다.
2019년부터는 생계·의료급여에서도 소득재산 하위 70% 중 노인·중증 장애인이 포함된 가구에 적용해오던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기로 했다.

정부 방침은 장기적으로 부양의무자라는 개념을 폐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한국의 민법에서는 '부양의무자'를 직계가족과 배우자로 명시하고 있다.
개인의 노후를 책임지는 것은 그 가족임을 법에 적어놓은 것이다.
이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것은 부양의 의무를 가족이 아닌 공적 영역으로 이끌어내겠다는 뜻이다.

특히 부양의무자 기준은 ㄱ씨와 ㄴ씨의 사례에서 보듯 저소득층에게 족쇄로 작용할 때가 적지 않았다.
형편이 어렵더라도 부모와 아들·딸, 사위·며느리가 있으면 생계·주거·의료급여 등 기초 생활급여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최소한의 부양책임을 지우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아예 소식이 끊겼거나 왕래가 없는 가족의 존재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2016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상대적 빈곤율은 16%, 상대적 빈곤층은 80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총 103만5435가구의 163만명이다.
빈곤층의 20% 정도만이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상당수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에서 탈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5년에 생계를 같이하지 않는 조부모나 손자·손녀를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하고, 2015년 아들·딸이 사망하면 사위·며느리를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하는 등 꾸준히 조건이 완화됐지만, 당사자들은 전면 폐지를 요구해왔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 모두 이 기준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부양의 책임을 맡은 것은 이제 사회적 흐름이다.
지난해 11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부모 부양을 가족이 해야 한다'는 의견은 30.8%에 불과했고, '가족과 정부·사회가 함께 돌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45.5%로 가장 많았다.

세계적으로도 부양의무자 범위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추세다.
미국에는 이런 기준 자체가 없다.
가족의 유무가 아니라 소득과 재산 기준에 따른 자산조사가 공적 부조를 제공할깆 결정하는 최대 기준이다.
부모나 자녀, 형제, 배우자가 있다 해서 국가로부터 생활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복지국가 전통이 강한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식이 강하다.
스웨덴에서는 1978년까지 법률상으로는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도록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1956년 부터 부모 부양을 자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 맡아왔다.
영국·프랑스·독일에서도 법적인 가족이나 친족이 공공부조 수급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핵가족 중심으로 부부와 미혼 자년들에게만 부양의무를 부과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여유진 기초보장연구실장은 "복지선진국들은 기본적으로 노인기초연금이나 공적연금이 잘 보장돼 있어서 부양의무를 따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며 "노인들이 연금만 받아도 빈곤선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노인빈곤율이 청년빈곤율보다 훨씬 낮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국은 노령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없애면 급속히 수급자가 늘어날 수 있다"며 "이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경향신문 홍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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